한국 위인 이야기

조선시대 위인 단원 김홍도 그림 알아보자.

IT 특임대 2022. 9. 2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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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위인 단원 김홍도 업적 배워보자.

조선시대 위인 단원 김홍도는 영조와 정조시대에 활동하였으며, 조선시대 그림문화를 발전시켰다. 우리나라 고유의 그림기법과 서양화법을 도입하여 새로운 그림화법을 창조했다. 김홍도는 이전시대에서 그리지 않았던 일반 백성들의 삶을 그렸으며, 그가 그린 그림들은 당시 민중들의 삶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풍속화를 통해 문화 발전을 이룬 조선시대 위인 단원 김홍도의 그림 업적을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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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위인 단원 김홍도 그림 종류 알아보자.

조선시대 위인 단원 김홍도는 어려서부터 그림을 잘 그렸으며, 인물화 산수화 풍속화 등 많은 그림에 소질이 있었다. 이중에서 특히 풍속화를 잘 그렸다. 조선의 풍속화는 일반 사람들의 삶을 그린 그림으로 백성들이 살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20세 초반의 나이에 임금과 정부 행사의 그림을 그리는 기관이었던 도화서에서 일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다.

 

조선시대 위인 단원 김홍도는 사실주의에 입각한 풍속화를 발전시켰다. 조선시대 그림은 양반 귀족들의 인물화나 산수화 등이 주요 소재였으나, 김홍도는 일반 민중의 삶과 행복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조선시대 영조와 정조 시대에 문화 발전이 많이 이루어졌는데, 그림 부분에서는 겸재 정선의 산수화와 함께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는 단연 돋보이는 발전을 이룬 장르이다.

조선시대 위인 단원 김홍도 스승 강세황 관계 알아보자.

강세황 관리이자 평론가였으며, 조선시대 위인 단원 김홍도의 스승이다. 김홍도는 어린 시절에 외할아버지와 친분이 있던 강세황을 처음 만난 후 안산에 있는 강세황의 집에서 그림을 그리는 수업을 받았다. 김홍도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아차린 강세황은 김홍도를 그림을 그리는 기관인 도화서에서 일할수 있도록 임금에게 추천하였다. 김홍도는 도화서 내에서도 그림 실력을 인정 받아 29세의 젊은 나이에 임금의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가 되었다.

 

 

 

 

 

 

조선시대 위인 단원 김홍도와 강세황의 관계는 생을 마감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스승인 강세황은 김홍도를 조선 최고의 화가로 인정하고 존경했다. 김홍도가 서양화법을 도입하여 그림에 원근감을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은 스승인 강세황이 먼저 이러한 화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강세황과 김홍도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넘어 함께 조선시대 문화를 발전시킨 동반자였다.

조선시대 위인 단원 김홍도 정조대왕 총애받다.

조선시대 위인 단원 김홍도는 도화서에서 근무할 때 세자였던 정조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처음 만났다. 정조가 임금에 오른 후에도 문화 발전을 이루기 위해 김홍도를 가까이에 두고 의견을 들었다. 김홍도는 정조의 후원을 받는 예술가였으며, 그가 나라에 많은 공적을 세우자 정조는 그에게 지방 관직을 주었다. 김홍도는 관료 생활에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3년간의 충청도 관료 생활을 마무리하고 돌아와서는 다시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되었다.

조선시대 위인 단원 김홍도 화법 특징 배워보자.

조선시대 위인 단원 김홍도 화법의 특징은 사실주의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김홍도가 그린 그림으로 유명한 '씨름', 서당' 등의 그림은 민중들의 삶을 사실 그대로 표현하였으며, 한국적인 풍경을 잘 표현하였다. 채색 부분에서도 그림의 배경은 은은하게 먹으로 색칠을 하였으며, 나무와 바위 등은 조금 더 짙게 색칠을 해서 명암이 돋보이게 했다. 조선의 화가 김홍도는 이전 시대와는 다른 그림 문화를 창조한 천재 화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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