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위인 이야기

신라시대 한국 위인 장보고 업적 및 활약 알아보기.

IT 특임대 2022. 9. 14.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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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한국 위인 장보고 업적 알아보자.

신라시대 한국 위인 장보고는 신라시대 바다를 장악하여 당나라와 신라 그리고 일본과의 해상 무역을 주도하였다. 중앙정부의 세력이 지방까지 미치지 못하자 남해안에는 해적이 자주 출몰하였다. 장보고는 완도에 해상 무역기지인 청해진을 설치하고 해적 소탕과 함께 해상무역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신라시대 해상무역을 발전시킨 한국 위인 장보고의 업적 및 활약에 대해 알아보자.

신라시대 한국 위인 장보고 당나라 군인 되다.

신분이 낮은 집안에서 태어난 장보고는 신라에서 관직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친구 정연과 함께 당나라로 건너갔다. 당나라의 군대에 들어가기 위한 시험에서 그는 뛰어난 무술 실력으로 시험에 합격하였다. 그는 당나라 군대에서 졸병으로 시작해서 30세가 되었을 때 군사 1,000여 명을 거느린 당나라 장교가 되었다.

 

당시 당나라와 신라는 중앙정부 권력이 지방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바다를 중심으로 해적이 출몰하였다. 해적들은 신라인들을 잡아 중국에 노예로 팔거나 자신들의 일꾼으로 삼았다. 이런 신라인들의 참혹한 광경을 목격한 신라시대 한국 위인 장보고는 당나라 군인 생활을 마무리하고 신라로 돌아와 해적을 소탕할 것을 결심한다. 이 시기가 흥덕왕 3년으로 서기 828년이었다.

무역기지 청해진 만든 신라시대 한국 위인 장보고 활약 알아보자.

신라시대 한국 위인 장보고는 신라로 돌아오자마자 당시 신라왕이었던 흥덕왕에게 해적을 물리치기 위해 군사 1만 명을 요청하였다. 이와 함께 청해진에 군사기지를 설치할 것을 건의하였다. 흥덕왕은 그의 건의를 받아들였고 그를 청해진대사로 임명하였다. 장보고는 청해진에 군사시설을 만들고 군사 1만 명을 훈련시켰다. 해적의 근거지에 대한 정보를 파악해서 서해와 남해에 있는 해적들을 모두 소탕하였다. 이후 장보고는 당나라와 일본의 해안까지 진출하여 동아시아의 바다 해상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신라시대 한국 위인 장보고 해상 무역 살펴보자.

해적 소탕을 마무리한 신라시대 한국 위인 장보고는 청해진을 중심으로 해상 무역의 주도권을 가졌다. 청해진은 신라, 당나라, 일본을 잇는 대외 무역활동의 본거지로 발전했다. 장보고는 중국 남부지역까지 활동영역을 넓혔으며, 아라비아 상인들과의 교역을 통해 중동아시아 제품, 유리제품 등을 신라와 일본에 공급해 막대한 부를 축척하기도 했다. 또한 일본과 당나라 사신이나 무역상들이 바닷길을 이용할 때 장보고에게 보호를 요청하는 일이 빈번히 있었다. 장보고의 세력이 얼마나 광범위했었는지를 알려주는 예이다.

 

신라시대 한국 위인 장보고는 중국 산둥반도에 적산법화원이라는 절을 세었으며 이곳에서 신라와 일본에서 온 승려들을 머물게 했다. 적산법화원은 신라인들이 운영을 했으며 정기적으로 법회를 열어 당나라에 있는 신라인들이 결집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장보고는 해상 무역을 통해 개인 무역뿐만 아니라 국가 간 무역에도 관여를 하게 되었다.

신라시대 한국 위인 장보고 청해진 반란 일으키다.

장보고의 권력이 커지자 그는 자신의 딸을 문성왕의 왕비로 삼으려 했다. 하지만 서라벌 귀족들의 반대로 인해 뜻을 이루지 못하자 청해진을 근거로 반란을 일으켰다. 귀족들은 장보고의 부하였던 염장을 보내 장보고를 제거하였다. 자신의 부하였던 염장이 청해진으로 돌아오자 장보고는 큰 잔치를 베풀었다. 이 자리에서 염장은 장보고에게 술에 취하게 해 그를 암살했다. 신라시대 한국 위인 장보고는 부하의 배신으로 생을 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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