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위인 이야기

통일신라 김유신 장군 활약 알아보자.

IT 특임대 2022. 9. 13.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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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김유신 장군 업적 알아보자.

우리나라 최초로 삼국을 통일한 나라는 신라다. 고구려, 백제, 신라로 나뉘어 있던 삼국을 신라가 하나로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은 김유신 장군의 활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 신라왕이었던 무열왕 김춘추와 함께 통일에 대한 열망이 같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삼국을 통일한 김유신 장군 업적을 알아보자.

통일신라 김유신 장군 집안 내력 배워보자.

김유신의 할아버지는 김무력이었고 아버지는 김서현이었다. 그의 집안은 금관가야 왕족이었으나 금관가야가 신라에 항복하면서 신라로 편입되었다. 신라에서 김유신 장군 집안은 진골 귀족으로 대우를 받았다. 김유신은 15세가 되던 해에 그는 신라 청소년 군사 집단이었던 '화랑(花郞)'이 되었다. 17세 되던 해에 고구려, 백제, 말갈의 군사들이 신라 국경을 침범하는 것을 보고 삼국통일을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했다. 삼국통일에 대한 결의를 다지기 위해 혼자 동굴로 들어가 목욕재계를 하고 다른 나라의 침범으로부터 신라를 지켜야겠다고 다짐하며 통일을 향한 열망을 키웠다.

삼국통일 업적 이룬 김유신 장군 활약 알아보자.

신라 최고의 장수였던 김유신 장군은 '소정방(蘇定方)'이 이끄는 당나라 군사와 연합하여 계백장군과 5천의 백제군이 수비하고 있던 황산벌을 공격하였다. 초기 전투에서는 완강히 버티는 백제 군사들에게 패배를 하였지만, 자신의 목숨을 던진 화랑 관창의 충성심에 힘입어 백제군을 격파하고 사비성에 도착하였다. 미리 도착해 있던 당나라 군대와 함께 사비성을 함락하고 백제를 멸망시켰다. 백제가 멸망한 때는 660년이었다.

 

신라는 고구려를 무너뜨리기 위해 많은 공격을 했지만 연개소문이 지휘하고 있던 고구려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하지만 연개소문이 죽고 아들들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면서 고구려에 내분이 생겼다. 고구려를 지배하고 있던 지배층이 무너지면서 강했던 고구려 힘은 약해졌고, 당나라와 연합한 신라의 김유신 장군은 쉽게 평양성을 함락하고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선덕왕 신뢰받은 김유신 장군 살펴보자 .

김유신 장군이 활약하던 시기에 신라는 선덕왕이 통치하였다. 출전하는 전쟁에서 모두 승리를 한 김유신은 선덕왕의 총애를 받았다. 백제의 많은 성을 함락하여 영토를 넓혔으며, 백제 장수 계백의 침공을 막았다. 이로 인해 신라 귀족이 오를 수 있는 최고 관직은 '소판(蘇判)'이었는데, 김유신은 이 관직까지 오르게 되었다. 이후 선덕왕은 김유신의 공로를 인정하고, 신라 귀족으로 예우를 했다.

신라 무열왕 김춘추와 김유신 장군 관계 알아보자.

김춘추와 김유신 장군은 20대 시절부터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둘은 함께 여행을 다니고 귀족들의 놀이였던 공차기 놀이도 함께 즐기곤 했다. 김유신은 김춘추가 나중에 큰 인물이 될 것임을 알아채고 자신의 여동생과 결혼을 시키고자 했다. 이를 위해 김유신은 자신의 동생들을 김춘추에게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결국 둘째 여동생 문희와 김춘추가 결혼을 하게 되었고, 김유신은 김춘추의 처남이 되었다.

 

김유신 장군은 백제의 12성을 함락시키고 많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이로 인해 당시 신라왕이었던 진덕왕에게 많은 보살핌을 받았다. 진덕왕이 자식이 없이 사망하자 최고 권력단체였던 '화백(和白)'이 알천을 국왕으로 추천하였으나 알천이 이를 거부하였다. 이에 따라 김유신은 김춘추를 새로운 신라왕으로 추천하였다. 김춘추가 무열왕으로 즉위한 후 김유신은 신라 최고의 관직이었던 '상대등(上大等)'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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