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최무선이 만든 화약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고려시대 태어난 최무선은 어려서부터 화약을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당시 고려는 지배층의 권력 싸움으로 인해 중앙 정부의 힘이 약해져 있었고, 이러한 상황을 틈타 해안가 지방으로는 왜구들의 침략이 빈번하던 시절이었다. 고려시대 최무선을 이들을 무찌를 수 있는 화약을 개발하게 되었는데, 어떤 종류의 화약이 개발되었으며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지에 대해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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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무선의 어린 시절 국가 상황은 어떠했는지 알아보자.
최무선의 아버지는 최동순이며 당시 광흥창사라는 관직을 가지고 있었다. 광흥창사는 고려시대 관리들의 녹봉을 관리하던 직책으로 예성강 일대에 곡식을 보관하던 창고를 관리하는 것이 주된 임무였는데, 중앙 정부의 권력 싸움으로 인해 지배 권력이 지방으로까지 미치지 못하자 왜구들의 침입이 빈번하게 일어나게 되었다.
아비지가 근무하던 광흥창은 세곡을 운반하는 조운선이 모두 정박하는 곳으로 세곡선은 다양한 물자와 곡식을 중앙 정부로 이송하기 위한 것이었다. 물자를 약탈하기 위해 조직적인 군사를 만들었던 왜구들에게 세곡선을 탈취하는 것이 약탈의 가장 큰 목표였다. 어려서부터 이러한 사정을 알고 있던 최무선은 왜구들의 침략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화약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생각이 나이가 들면서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게 되어 화약을 발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최무선은 어떻게 화약을 만들었나.
고려말 최무선이 화약을 만들기 이전에도 이미 화약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화약은 외국에서 들여온 것으로 화약 성능이 기대했던 것보다 약했다. 고려시대 공민왕은 당시 명나라에 화약 제조법을 알려달라고 요청하였으나, 명나라는 자신들이 무기를 제조해서 도움을 줄 수는 있으나 화약 제조법을 고려에게 전달할 수는 없다고 거절하였다.
최무선은 정식적인 절차를 통해 명나라의 화약 제조법을 습득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고 고려를 왕래하는 상인들을 수소문하여 화약 제조법을 알고 있는 사람을 찾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강남에서 온 상인인 이원을 통해 화약 제조법에 대한 몇 가지 방법을 확인하고 이를 토대로 화약을 제조하여 시험을 하였다. 화약 시험을 마친 후 정부의 관련 조직인 도당에 화약 개발을 알리고 시험을 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그의 말을 믿지 않았고 배척하기만 하였다.
최무선 드디어 화통도감을 설치하다.
도당 관리들에게 화약 시험이 거절되었으나 최무선은 실망하지 않고 끈질기게 화약 제조법을 연구하는 한편 국왕에게 화약을 개발할 수 있는 기관을 설치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고려 우왕 3년에 화통도감이 설치되었다. 화약 개발에 공이 큰 최무선이 화통도감의 제조가 되어 모든 화약 제조 및 이를 이용한 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화통도감이 설치된 후 화약 개발은 급속도로 발전을 하였다. 고려시대 최무선은 개발되는 화약을 이용하여 대장군포, 이장군포, 석포, 화포, 신포, 화포 등의 총포류를 개발하게 되었으며, 발사기용 화기와 질려포 등 각종 화기를 개발하게 되었다. 또한 각종 화포를 함포와 배에 실을 수 있도록 전함을 개선하고 이에 대한 교육과 훈련에 집중하게 되었다. 화약을 이용한 함포의 수량이 늘어나면서 함포를 전무적으로 다루는 화통방사군이 별도로 조직되었다.
최무선이 만든 화포의 위력이 왜구를 물리치다.
화통도감이 설치되고 각종 함포와 총포가 새롭게 개발되면서 실전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특히 고려말에 우리의 해안가 지역을 약탈하던 왜구들에게 최무선의 신무기들이 사용되면서 왜구들은 연전연패를 당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 배를 이용하여 우리의 전라도 지역을 약탈하던 왜구들은 고려의 함포로 인해 모두 불바다가 되었고, 그들이 만들어 놓은 진지도 화포를 이용하여 모두 무력화하였다.
왜구들은 그들이 끊임없이 약탈을 자행하던 한반도의 해안가를 다시는 넘보지 못하게 되었다. 이러한 승리의 중심에는 화약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와 총포 개발을 한 최무선의 노력과 공이 있었다. 그는 새로운 신무기가 개발될 때마다 개발 과정과 내용을 기록으로 남겼고 이를 통해 화약과 함포 제작 기술이 꾸준히 이어지게 되었다.
최무선이 화통도감을 통한 신무기 개발은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간 초기 시절에는 주춤하였으나 조선 태종 시절에 최무선의 아들인 최해산이 임금의 명을 받아 화차를 개발하는 성과를 얻게 되었다. 최무선이 만든 화포 제조법이 기록으로 전해졌기 때문에 새로운 무기인 화차가 개발될 수 있었던 것이다. 고려말부터 조선초에 이르기까지 누구도 시작하지 않았던 화약 제조를 통한 신무기 개발에 공을 들인 최무선의 활약을 되새기고 새로움을 창조하는 노력을 경주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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