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위인 이야기

조선시대 발명가 장영실 업적 알아보기

IT 특임대 2022. 9. 12.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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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발명가 장영실 만든 발명품 배워보자.

우리나라 과학 역사에서 조선시대는 많은 발전이 이루어진 시기다. 조선시대 발명가 장영실이 만들어 낸 다양한 기구와 생활용품들이 실생활에 사용되면서 백성들에게 생활 기준을 제공하게 되었으며, 이를 통해 삶이 윤택해지고 생활수준도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조선시대 발명가 장영실이 만든 발명품 종류와 어떤 방면에 사용되었는지에 대해 배워보도록 하겠다.

 

발명가 장영실 출생 배경 알아보자.

발명가 장영실 아버지는 중국에서 귀화하였으며, 어머니는 동래현 노비였기 때문에 그도 어려서부터 노비 신분으로 자랐다. 당시에 노비들의 기록은 문서로 남겨지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그의 어린 시절 행적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 없다. 어려서부터 물건을 만들고 고치는 능력이 뛰어나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게 되고 이로 인해 궁궐에서 일하는 전문 기술자가 되었다. 장영실이 궁궐에서 일하기 시작한 시기는 조선 태종 때이며 세종은 선대왕에 이어 그가 가진 능력을 귀하게 여기고 아낌없는 지원을 하게 되었다. 이로써 그는 조선시대 과학자로서 새로운 과학 기술과 천문 기술을 창조해내기 시작했다.

 

발명가 장영실 만든 조선시대 물시계 알아보자.

세종대왕 즉위 후 조선 자체의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기구를 발명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발명가 장영실을 비롯해 천문관 관리들을 중국에 파견하여 천문 시설과 시간 측정 기구를 만드는 곳을 시찰하고 공부하도록 했다. 중국 시찰을 마치고 돌아올 때 천문 관측 시설, 과학 문물 서적을 수집하여 들여왔다. 이를 토대로 세종대왕 지원 아래 처음 물시계를 만들었고, 이를 개선하여 자동 물시계를 만들었다. 물시계는 일정한 시간이 되면 자동으로 종을 울리게 만든 시계로 태양의 움직임으로 시간 기준을 삼던 당시 사람들이 가진 시간 기준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발명가 장영실 개발한 천문 측정 기구 알아보자.

조선시대는 하늘은 오직 중국만이 측정할 수 있다는 대국주의가 팽배해 있던 시기다. 중국에서 관측된 위치 좌표를 조선은 받아서 사용하는 시기였다. 세종은 중국이 만들어 조선에 제공하는 정보가 아닌 조선 자체 천문기구를 갖기 원했다. 때문에 발명가 장영실을 통해 조선 하늘을 관측할 수 있는 천문 측정 기구를 발명하고자 했다. 장영실을 비롯한 과학자들은 오랜 연구 끝에 조선 자체의 천문 측정 기구를 만들었다. 조선의 천문 측정 기구는 태양이나 별, 달이 이동하는 움직임을 파악해서 계절 변화를 관찰할 수 있는 기구로 이를 통해 달력을 제작하고 계절과 날씨 변화를 더 정확하게 예측 가능하게 되어 백성들이 좀 더 쉽게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

 

발명가 장영실 세종대왕 업적을 발전시켰다.

조선시대 세종대왕은 한글을 비롯한 많은 업적을 남겼으며 물시계, 해시계 등 과학적인 분야에서도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과학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근간은 능력이 있는 신하를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널리 중용을 함으로써 새로운 도구와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백성들이 모두 사용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세종대왕은 노비 신분이었던 그를 많은 신하들이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벼슬을 주었으며, '대호군' 벼슬까지 오르게 했다. 이는 세종대왕이 장영실의 능력을 인정했다는 증거이며, 그를 통해 세종대왕이 원했던 조선의 시간과 천문 측정 기구를 개발하였다.

 

발명가 장영실 세종대왕과 결별한 이유.

세종대왕이 병 치료를 위해 이천으로 온천욕을 떠나는 행차에 발명가 장영실이 가마를 만드는 일에 감독으로 참여하였다. 이천으로 떠나는 세종대왕이 가마를 탔을 때 가마가 부서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비록 왕이 다치지는 않았으나 국왕 안위에 관련된 중요한 사항이었기 때문에 이 일로 인해 그는 불경죄로 받고 관직에서 파면되었다. 세종대왕이 다시 그를 관직에 중용하는 일은 없었으며, 이후 행적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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